김준오, 시론, 삼지원, 제4판, 37ㅉ

그에 의하면 서정적 자아는 첫째로 주관과 객관, 감정과 이성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이고, 둘째로 세계와의 접촉 없이도 존재하는 자아다. 이런 서정적 자아는 이기철학의 '성'에 해당한다. 이 성은 세계와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에 이 성이 사물에 응해서, 곧 세계와 접촉해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이것을 정이라 한다. 말하자면 정은 서구의 '실현된 자아(embodied self)'의 개념과 유사하다. 따라서 성으로서의 자아는 정의 자아를 매개로 우리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천인합일에 도달하려는 것이 유교의 이념이고 이런 천인합일의 경지는 '성'으로서의 서정적 자아에게 가능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성'이 다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두 서정적 자아로 분류되는 점이다. 따라서 천인합일, 곧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은 이 두 서정적 자아에 의하여 두 가지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기철학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이와 기로 되어 있는데 사람이 갖고 있는 이만 지칭할 때는 본연지성이 되, 이와 기를 함께 지칭할 때에는 기질지성이 된다. 여기서 이는 동일, 통일, 보편화의 원리며 기는 차별, 분별, 특수성의 원리다. 이런 근거에서 조동일 교수는 조선조 시가의 주류적 장르인 시조를 본연지성의 시조와 기질지성의 시조로 분류한다.

본연지성은 사람이 갖고 있는 이(동일, 통일, 보편화의 원리)만 지칭한 것이기 때문에 본연지성에서 보면 자아와 세계가 처음부터 구분되지 않는 만큼 분별, 대립이 없이 자아와 세계는 이미 동일성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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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시와 같은 문학의 영역은 글 쓰는 이를 창조자, 혹은 주술사 쯤으로 본다.

창조적 원리의 탄생을 궁금해하는 철학이 언어를 다루는 학문과 예술에 깊이 연관될 수밖에 없음을 나는 이 책을 보며 꾸준히 느끼고 있는 바이다.

천재적인 생각들이 기염을 토해낸다. ...

문장의 바다들 속에서 나는 갓 태어난 새끼거북이가 된 느낌이다.

 

Posted by 그렌치바다 그렌치바다
학교 제출용으로 쓴 글이다. 소논문을 제출하라는 과제였지. 나는 꽤나 재미나게 하였다. 덕분에 레이디 가가 뮤직비디오를 신물나게 보긴 했다.

원래 본문은 형식도 굉장히 잘 지켜지고, 본문 내용에 다 각주가 있으며, 사진도 첨가되어 있지만 한글에 쓴 걸 긁어오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날라갔다. 그러나 뭐, 내 생각에 이 소논문은 교수님 혼자 보시기에는 좀 아깝다고 생각한다. (오만한 나의 콧대...?!!) ㅎㅎㅎㅎ

레이디 가가를 페미니즘이랑 연결시키기가 무리라고 생각이 들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서 의외기도 하고, 즐거웠다. 이 중 가장 쓰기 어려웠던 본문은 Alejandro...그냥 난 성적 자유가 좋아 섹시한 거 좋아 야한 거 좋아를 그럴 듯한 말로 바꾸기가 상당히 까타로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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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본 페미니즘

 

. 서론 행위예술과 팝의 만남, 페미니스트 레이디 가가

- 레이디 가가, 그녀는 누구인가

- 연구 대상 선정 이유

 

. 세 편의 뮤직비디오로 보는 레이디 가가와 페미니즘

1. 여성의 자아에 값을 매기지 말라, Bad Romance

2. 여성의 자족과 자립을 막지 말라, Telephone

3. 여성의 성적 즐거움을 허락하라, Alejandro

 

. 결론 여성이여, 당당하게 말하고 노래하라

 

. 참고자료

 

. 서론 행위예술과 팝의 만남, 레이디 가가

 

혜성처럼 등장한 포스트 마돈나, 레이디 가가의 본명은 스테파니 조앤 엔젤리나 저머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1986328일 생이다. 그녀는 가톨릭을 믿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부모를 두었으며 그들의 지원 아래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하였다. 그녀는 십대 때 작곡을 하였고, 14세 때에는 오픈믹 나이트(Open-mic Nights at New York's Bitter End) 공연을 하기도 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17세에 그녀는 뉴욕대학의 티시 예술학부(Music Theatre)에 조기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에 입학한지 1년 만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된다. 대학을 그만 둔 그녀는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게 되며, 2007년에는 행위 예술가이자 고고 댄서, DJ인 레이디 스타라이트(Lady Starlight)와 같이 도심의 클럽들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거침없는 공연은 여러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다. 또한 레이디 가가를 유명하게 만든 그녀의 파격적인 의상은 이때 같이 공연한 레이디 스타라이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을 계속 해나가던 그녀는 2008년에 LA로 거취를 옮기고 그곳에서 첫 번째 데뷔앨범인 The fame을 발매하게 된다. 데뷔 앨범의 대표 싱글인 Just DancePoker Face가 빌보드에서 순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레이디 가가의 유명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이후로 그녀는 현재까지 두 장의 정규 음반, 두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 세 장의 EP 음반, 9장의 싱글 음반, 11편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가 만약 다른 팝스타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면 본 논고는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들을 분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디 가가는 다른 많은 팝스타들처럼 뛰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훌륭한 무대를 선사한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세계는 다른 팝스타들과는 다른 점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다른 이들과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레이디 가가는 팝스타이지만 자신을 행위예술가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옷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의상과 같이 보이는 것들을 중요시 여긴다. 무대 위의 노래와 시각적 이미지들이 하나로 묶여져 세트가 된다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보이는 것에 관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심지어 앤디 워홀에게 영향을 받아 하우스 오브 가가(Haus of Gaga)라는 크리에이티브 팀을 조직하여 그녀만의 시각적 이미지를 창작하고 표현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본 논고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레이디 가가만의 특색은 그녀가 페미니스트 팝스타라는 점이다. 그녀는 다른 여성스타처럼 단순히 남성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적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보적인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입밖에 낸다. 그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하며 이전까지 우리가 여성에 대해 배워 오고 인지해온 모든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녀의 색깔은 일회적이지 않으며, 그녀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보인다. 특히 그러한 모습들이 가장 많이 보이는 작품은 그녀가 만든 세 편의 뮤직비디오들로, 본론에서 다룰 내용은 그녀의 뮤직비디오들에서 발견되는 페미니즘 요소들의 분석이다.

 

 

. 세 편의 뮤직비디오로 보는 레이디 가가와 페미니즘

 

 

1. 여성의 자아에 값을 매기지 말라, Bad Romance

 

Bad Romance는 레이디 가가의 리패키지 EP 앨범 The Fame Monster(2009)의 리드 싱글로 발매되었으며 뮤직비디오는 공식 홈페이지에 20091110일 올라왔다. 이 뮤직 비디오의 감독은 여러 유명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들과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맡았던 프란시스 로렌스(Francis Lawrence)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역시 레이디가가의 뮤직비디오라는 찬사를 받으며 특유의 파격적인 노출과 의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뮤직비디오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가수가 야한 옷을 입고 감각적인 춤을 추었다는 것만 인상적인 요소는 아니다. 이 뮤직비디오의 서사야말로 자극적인 외부적 모습에 숨겨져 있는 참된 알맹이인 것이다.

Bad Romance의 영상은 총 세 부분으로, 맨 처음에 나오는 도입부, 전반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에는 레이디 가가를 중앙으로 놓고 무용수들이 늘어져 있다. 이 도입 부분은 뮤직비디오의 전체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이 부분은 레이디 가가와 그 무용수들을 소개하는 장면이라 생각하며 쉽게 지나쳐 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본 논고는 이 장면에서 소개되는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도입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레이디 가가와 무용수들 모두가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할 만한 드레스 코드와는 벗어난 스타일들로 가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기도 하고, 문신이 가득한 몸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가만히 같은 자세로 카메라 혹은 앞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이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도전적인 시선과 자세, 의상에는 레이디 가가와 그녀의 동료들이 지향하는 패션과 시각적 이미지가 기존 주류사회에 대한 반발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노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나오는 곳은 정신병원으로 보이는 곳이다. 온통 사방이 하야며 넓은 장소에는 하얀 플라스틱 관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monster와 십자가가 빨간색 바탕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레이디 가가와 댄서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의 모습은 괴물이다. 이 괴물들이 춤추는 부분이 바로 이 뮤직비디오의 전반부이다.

전반부에 나오는 레이디 가가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머리 부분이 닭 벼슬이고 눈은 가리는,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댄서들과 같이 어두운 방 안에서 춤추는 레이디 가가, 분홍 머리를 한 채 동공이 심하게 확장되어 욕조에 누워 있는 레이디 가가, 거울을 보고 있는 검은 옷의 레이디 가가이다. 세 레이디 가가 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비정상으로 보이며 그들은 몸의 관절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들은 정신병원에서 편안히 춤을 추거나 누워 있거나 스스로를 관찰한다. 아무도 그들의 비자연성을 훼방 놓거나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다.

괴물차림을 한 댄서들과 레이디 가가의 옷차림은 고스 스타일이다. 고스 스타일이란, 중세 고딕 문학 속에서의 고딕이나 80년대까지의 고스와는 달리 현대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신비감과 미래의 판타지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스타일을 일컫는다. 댄서들과 레이디 가가의 옷차림을 통해 그들의 성별을 구분하지는 못한다.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성별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그들 자신들이 일종의 괴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고스 패션을 통해 자신들이 괴물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자 한다.

괴물과 비정상성은 레이디 가가에게 상당히 중요한 단어들이다. 그녀는 그녀의 열성팬들을 작은 괴물들(Little Monsters)이라 부른다. 그녀의 앨범 제목에는 monster라는 문구가 많이 삽입되어 있다. 레이디 가가는 보통의 사회 일원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면모를 비정상과 괴물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개성이며 매력이라는 것을 의상과 언행을 통해 분명히 한다. 그녀는 괴물일 때 자유롭고 편하다.

그녀의 무성적인 괴물이라는 자기형상화는 남성중심 사회와 맞지 않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예부터 남성들은 자신의 시선에서 순종적이지 않는 여성들을 여자 괴물이라고 칭했다.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정상일 때,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는 비정상적인 것이 되며 특히나 남성들이 바라는 관능적이거나 혹은 순종적인 기존의 여성상과 다른 것이 되면 비정상을 뛰어넘어 괴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는 무성이 아니다. 그녀는 엄연한 여자이다. 검은 레이디 가가가 스스로를 거울을 통해 탐미하듯 바라본다. 바라보던 그녀는 사타구니 부분의 치마를 도발적으로 걷어 올린다. 그녀는 자신의 비정상성 안에 놓인 여성이라는 특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정신병원 안에 있지 못한다. 욕조에 갇힌 분홍색 머리의 레이디 가가는 두 명의 하얀색 옷을 입은 수행원에 의해 욕조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녀는 강제로 물을 마시게 되며, 힘껏 반항하지만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헝겊 담요로 자신의 몸을 가리던 레이디 가가가 수많은 하얀색 옷의 댄서들에게 억지로 옷이 벗겨지며 뮤직비디오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레이디 가가가 헝겊 담요 안에 입고 있던 옷은 보통 남성들이 열광할만한 섹슈얼하고, 노출이 심한 옷이다. 그녀는 수많은 남성들 앞에서 춤을 춘다. 그러나 그녀의 춤은 그녀가 원하지 않은 것이다. 끌려나와 억지로 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비정상적인 삶을 살던 레이디 가가는 여성성이라는 본연의 성질을 직시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여성성을 남성들과 사회는 가만 두지 않았고, 레이디 가가에게 야한 옷을 입고 춤을 춤으로써 자신들에게 봉사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그녀는 결국 춤을 보여준 사람들 중에 자신을 가장 높은 가격으로 부른 사람의 침대에 불려간다. 휘황찬란한 하얀 침대와 그곳에 앉은 입에 마스크를 쓴 남자 앞에서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옷을 벗고 하얀 속옷만 입은 모습을 노출한다. 남자는 침을 삼킨다. 그러나 다른 장면에서 곧 이어 붉은 색 옷을 입은 레이디 가가와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하얀 속옷을 입은 레이디 가가 앞의 남자는 침대와 함께 불태워진다. 붉은 옷을 입은 그들의 파워풀한 무용이 끝나고 나오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은 불에 다 타버려 해골만 남은 남자와 반쯤 탄 침대 위에서 그 해골 옆에 누운 레이디 가가이다.

Bad Romance는 주제가 아주 분명한 축에 속하는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이다. 그녀는 모나 있으며,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그것이 그녀의 정체성이다. 그녀만의 정체성에는 중성미가 내제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뮤직비디오 전반부의 끌려 나가기 전에 행복하고 평온한 레이디 가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가 자신 안에 있는 여성성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순간, 정신병원 밖의 세상은 그녀를 더 이상 괴물로만 인지하지 않는다. 남성들은 그녀가 자신을 위해 야한 춤을 춰줄 것을 바란다. 레이디 가가는 억지로 끌려져 왔으며 강제로 옷이 벗겨졌다. 그녀는 감히 자신에게 돈의 액수로 가치를 매긴 남자를 불태워 버린다. 그녀의 주체적 자아에 모욕을 한 대상을 제거한 것이다.

극단적이면서도 재기발랄한 이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의상과 상당한 노출 때문에 이러한 페미니즘 요소나 이야기를 놓치기가 쉽다. 본 논고는 레이디 가가가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주체적인 여성 자아의 긍정이지 특히 남성들로 대변되는 타자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뮤직비디오에 나온 것처럼 여자의 성적인 모습을 거래하는 남자들 같은 사람들이 넘치고 흐른다. 레이디 가가는 그러한 그들을 상징하는 한 남성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그들에게 조롱을 보낸 것이다.

 

 

2. 여성의 자족과 자립을 막지 말라, Telephone

레이디 가가의 Telephone은 리패키지 형식의 EP 음반 The Fame Monster의 세 번째 싱글이다. 미국의 여가수 비욘세(Beyonce)가 노래에 참여하였으며 음원 자체의 기록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12시간 만에 50만 건의 조회라는 기록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무려 930초를 자랑하는 대작 뮤직비디오이며 여성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답게 눈이 시원해지는 노출이 나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이전에도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적 있는 조나스 아커룬트(Jonas Åkerlund)가 연출하였다. 또한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성적 농담과 살인, 동성애 코드 때문에 미국의 폭스TVMTV는 이 뮤직비디오의 방영금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 뮤직비디오 역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의 배경은 여자 수용소이다. 이곳에는 여자들만 있는데 간혹 남성으로 보이는 여성들도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트랜스젠더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으며, 레즈비언들도 있다. 레이디 가가는 그들을 모두 여성 수용소 안에 넣는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나, 이성애자 여성만이 여성이 아닌 것이라 여성성에 대한 지향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성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트랜스젠더와 레즈비언의 권리를 옹호하는 그녀의 생각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뮤직비디오들 중에서 Telephone만 유난히 공격받은 이유를 그녀가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라는 화제를 건드려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항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선을 바탕으로 레이디 가가는 그들과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레이디 가가는 기꺼이 자신을 성소수자로 만든다. 그녀는 쇠사슬로 묶인 상태에서 감옥 안에 있는 다른 여성 수용자와 키스를 한다. 그 뿐이 아니라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비욘세와 그녀의 관계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레이디 가가는 뮤직비디오에서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가지며, 또 다른 여성과 함께 그 여성을 존중하지 않은 남성을 즉결 처단한다. 그녀는 그러한 상황에서 불편함이나 어색함, 죄책감이나 아쉬움을 보이지 않으며 남성을 그 어떤 이유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모든 여성 인물들은 남성이 부재한 상황을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성은 불필요한 존재이거나 처단의 대상이다. 그들은 자립한 존재들이며, 자족하는 방법을 안다. 그들은 스스로의 근육을 키우고, 남자처럼 싸운다. 기존의 남성들이 원하는 남성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여성은 이 뮤직비디오에서 단 한 명도 볼 수 없으며,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남성은 단 한 명인데 그마저도 악역이다. 이러한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에서 동성애는 남성의 체계를 거세해버린 페미니즘 요소를 갖는다. 레즈비언으로서 살겠다는 선언이 갖는 남성 중심의 사회 권력으로의 편승 거부라는 상징성이 바로 이 뮤직비디오에서 고스란히 보이는 것이다.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몸에 범죄현장에 쓰이는 노란 테이프를 붙인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를 봉인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주제로 한 상징화를 시도한다. Telephone이 나온 시점에서 노출과 기행, 작품의 선정성으로 유명인이 된 레이디 가가의 신체와 존재 자체를 범죄와 죄악으로 바라볼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레이디 가가는 보란 듯이 온 몸에 테이프를 붙였다. 그녀는 그들의 말에 수긍하는 척 하며 문란한 여성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자신의 신체를 범죄 현장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범죄 현장 테이프를 몸에 붙인 채 좁은 감방 안에서 엽기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를 취한다. 그 포즈 사이에서 그녀의 신체는 오히려 더 노출된다. 그녀는 여성의 신체와 자유로운 노출과 표현의 권리를 범죄로 낙인찍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적 이미지로 저항한다.

뮤직비디오의 중반부에 도달한 레이디 가가는 보석금을 내준 비욘세와 만난다. 여성 감옥을 나온 후 둘이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범죄를 기획하는 모습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같다.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는 그 둘은 비욘세의 전 애인과 그 전 애인이 있던 레스토랑의 모든 사람들을 집단 살인한다. 비욘세의 전 애인은 무례하기 그지없으며 여성을 배려할 줄 모르는 남성이다. 그의 고압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은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의 전체 분위기에 일조한다. 비욘세의 전 애인과 대조적으로 레이디 가가는 비욘세의 곁에서 그녀를 무시하거나 고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비욘세를 동등한 대상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의사를 항상 묻는다. 그 둘은 맨 마지막에 경찰의 추적을 받으면서, 서로 멀리 가자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두 손을 꼭 잡는다. 그 두 손은 곧 하트 모양으로 장면이 전환 된다. 이 장면은 이 둘을 동등한 여성 동지자로서 묶어주며 그 둘의 연대와 애정을 단순한 호감 이상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곧 맨 마지막 부분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카메라는 떠나는 그들의 자동차 뒷모습을 잡는다. 그 장면은 곧 여성의 성을 상징하는 기호인 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대미의 장식은 이때껏 보인 뮤직비디오의 모든 장면들이 모든 여성들을 수렴한다는 의미로 확장시켜 볼 수 있다.

Telephone에 나온 여성들은 모두 자립적이고, 자족적인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서로를 통해 충분한 존재들이다. 여자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 남성은 처벌의 대상일 뿐이며,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연대 역시 진정한 사랑일 수 있음을 말한 것이 바로 이 Telephone의 뮤직비디오 내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3. 여성의 성적 즐거움을 허락하라, Alejandro

 

Alejandro는 레이디 가가의 1집 리패키지 앨범 The Fame Monster에 수록된 싱글이다. 유명한 사진가인 스티븐 클레인(Steven Klein)이 감독하였다. 이 작품 역시 8분이 넘어가는 대작 뮤직비디오이며, 그 선정성과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의상과 장면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레이디 가가가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총이 유두 부분에 장착된 속옷은 총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하였으며, 뮤직비디오에서 나온 빨간 수녀복과 이와 관련한 개념으로 공연에서 보였던 투명 수녀 복장이 타락한 성녀를 묘사하였다는 지적과 함께 종교비하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이 작품의 맨 초반에는 그물 스타킹을 신은 남성 무용수가 등장한다. 뮤직비디오 전반에 나오는 모든 남성들은 레이디 가가를 여왕처럼 모시는 가신들, 혹은 군인들의 형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성적 정체성은 상당히 애매모호해 보인다. 그들은 여성용 그물 스타킹, 심지어는 하이힐까지 신고 있다. 그들의 복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성적 정체성을 판단하기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남성의 성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여성인 레이디 가가의 성적 정체성 역시 판명하기에는 불분명하다. 레이디 가가는 빨간 제의를 걸치고 사타구니에 있는 팬티와 성기 사이에 역방향 화살표처럼 보이는 십자가를 그려넣었다. 그녀의 십자가는 그녀가 남성의 성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도 보는 이로 하여금 구별하기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그녀는 뮤직비디오 전체에 모든 인물들의 성적 정체성을 애매모호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모든 남성들은 레이디 가가와 유사 성행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성은 단순한 이성애자 남성들이 아니다. 그들은 여성스러운 춤사위를 보이며, 집단 군무와 벗은 상의로 자신들의 몸을 자랑하는 동성애 성격을 가진 남성들이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남성다운 남성이나 여성다운 여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진지한 성행위도 아닌 단순히 유희적인 그들의 춤과 유사성행위는 레이디 가가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형상화해낸 여성의 은밀한 성적 판타지 구현이다. 본 논고는 레이디 가가의 이러한 판타지 구현이 대한민국의 아이돌 문화 중 하나인 팬픽 현상과 비슷해 보인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팬픽을 쓰는 사람들과 레이디 가가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팬픽의 소비자들이자 판매자들인 여성층은 동성애라는 코드를 차용하여 작품 속에서 여성의 존재를 아예 소거해버린다. 그들의 작품에 여성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으며,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남성만으로 서로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에는 레이디 가가 본인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여성의 존재가 소거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Alejandro와 한국 학생들의 팬픽에는 큰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 유사성은, 큰 차이가 있어 보이는 Alejandro와 팬픽 사이에 남성을 매개로 여성이 유희적 교환의 주체가 되려는 시도가 보인다는 점이다. 팬픽에서 중요한 공수의 구별, 즉 삽입 주체가 누구이며 받아들여지는 자가 누구이냐의 문제와 그것의 변형, 역전과 같은 현상들은 Alejandro에서 나오는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무너진 양상과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팬픽 작가들은 팬픽 속의 남성 인물들의 성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정상이라고 규정짓는 이성애와 거리가 먼 것으로 변형시킨다. 레이디 가가 역시 자신의 뮤직비디오 속의 남성 인물들을 성적으로 모호한 존재들로 변형시켰다. , 팬픽의 남자인물들이 팬픽 소비자들의 성적 쾌락을 위한 매개물들인 것처럼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모든 남성 무용수들 역시 레이디 가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단순한 성적 유희들을 위한 살아 있는 매개물들인 것이다. Alejandro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 요소는 팬픽과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처녀성에 대한 반발도 있다. 레이디 가가는 뮤직비디오에서 빨간 수녀 복장을 입고 묵주를 삼키는 시늉을 한다. 보통 수녀는 한 번 그 길에 들어서면 다시는 남자와 성관계를 맺지 않으며, 자신의 일평생을 신에게 봉사한다. 또한 수녀, 묵주와 관련된 천주교는 혼전순결을 미덕으로 삼는다. 레이디 가가는 그러한 상징성이 담긴 검은 수녀 복장을 성욕을 암시하는 강렬한 빨간색 수녀 복장으로 고쳐 입었다. 빨간색은 매혹과 성적 유혹을 상징한다. 레이디 가가는 거침없이 여성의 성욕을 금기시하는 천주교의 상징인 묵주를 묵묵히 입에 넣어버린다. 이러한 행위 속에는 여성의 성적 즐거움과 성욕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녀의 의견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레이디 가가는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남성 무용수들과 온갖 유사 성행위에 가까운 춤을 추지만, 그러한 춤사위들은 그녀의 도발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성을 즐기려는 노력의 일환에 가깝다. 레이디 가가는 기존 사회에 변태라고 낙인 찍힐만한 시도들을 Alejandro에서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난교로 보이는 행위를 묘사하기도 한다. 그녀의 그러한 묘사들은 남성이 여성을 매개로 성적 쾌락을 즐기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락되어 남성 중심의 포르노와 여성아이돌들이 범람한 세태에 레이디 가가만의 빛을 발한다. 그녀는 어째서 여성이 남성을 매개로 즐기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지를 묻는 것처럼 마치 팬픽을 쓰듯 뮤직비디오 안의 남성인물들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의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기존의 종교 단체의 의복과 상징물을 비꼬고 삼켜버림으로써 페미니즘 반항을 보여준다. 탐미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이 Alejandro 뮤직비디오는 우리나라에서 팬픽 문화가 생기며 제기된, 대중에 포섭되지 않고 하위로 위치한 여성의 즐거움에 대한 권리를 행동 속에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결론 여성이여, 당당하게 말하고 노래하라

 

본 논고는 레이디 가가의 세 편의 뮤직비디오들을 분석하면서 그 안에 있는 페미니즘 요소들을 찾아내었다. 그 과정에서는 단순히 화려하고 이상한 의상을 입은 팝스타로만 알려져 있는 레이디 가가가 페미니스트라는 진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녀가 갖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들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레이디 가가는 Bad Romance를 통해 사회가 여성성이라는 존중 받아야 할 자아에 값을 매기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기존의 남성 중심 사회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그녀는 이때껏 사회의 풍조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정신병원 안에 있어야 했음을 보인다. 비록 격리되어 있었을지라도 평온했던 그녀의 삶은 여성성이라는 사회의 남성들이 요구하는 가치의 발견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여성의 실존에 값을 매기는 남성을 단호하게 처벌한다.

그녀는 이어 Telephone에서 여성들로만 가능한 사회만의 가치와 여성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이성애자 여성들이 묶인 여성이라는 집단에서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들은 충분히 자족하며 자립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폄하하는 남성을 처벌하면서 그들만의 연대를 더 공고히 다진다.

마지막으로 본론에서 다루었던 Alejandro는 우선 우리나라의 팬픽이라는 문화 현상과 유사한 속성을 가짐을 밝혔다. 등장하는 남성인물들의 성적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모든 성적 행위들은 진지하지 않은 성적 유희의 행위들을 상징하게 된다. 사랑과 같은 추상적이고 진지한 양상보다는 성적 욕망과 성적 쾌락을 상징하는 뮤직비디오의 남성 인물들은 여성을 즐겁게 해주는 매개물로써 다루어지는데 이는 팬픽의 서사와 비슷하다. 또한 레이디 가가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처녀성을 암시하는 수녀 복장을, 성적 매력을 상징하는 빨간 수녀 복장으로 바꾸고 혼전 순결을 중요시하는 보수 종교인 천주교를 의미하는 묵주를 삼킴으로써 여성의 성적 즐거움을 억압하는 요소들을 비판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들은 여성의 자유와 그 자유로 성취할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것은 레이디 가가와 같이 영향력이 큰 팝스타가 이러한 뮤직비디오들을 제작하고 발표함으로써 여성들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때껏 여성의 불만 사항들과 연대에 대한 필요성, 성적 자유에 대한 투쟁은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들에는 더 큰 목소리와 누군가의 강력한 지지의사가 필요했다. 레이디 가가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뮤직비디오들을 통해 해준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막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을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많은 장애물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에게도 레이디 가가와 같이 목소리를 높여 여성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미국여성인 레이디 가가가 미국 여성을 위해 그러했듯 한국여성들 역시 한국 여성의 고충과 욕구를 표현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지금보다 더 당당하게 말하고, 노래해야 한다. 지금 바로 우리 사회에는 레이디 가가와 같이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페미니즘 정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 참고자료

1차 자료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뮤직비디오 Bad Romance

http://www.ladygaga.com/media/default.aspx?meid=5404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뮤직비디오 Telephone

http://www.ladygaga.com/media/default.aspx?meid=5599,

https://www.youtube.com/watch?v=GQ95z6ywcBY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뮤직비디오 Alejandro

http://www.ladygaga.com/media/default.aspx?meid=5820

 

2차 자료

 

인터넷 사이트

Ross McRae, June 29 2012, Starlight shines on Gaga, Entertainment,

http://au.news.yahoo.com/thewest/entertainment/access-all-areas/a/-/14084262/starlight-shines-on-gaga/

레이디 가가 공식 영어 홈페이지, http://www.ladygaga.com/discography/default.aspx

Haus of Gaga, http://www.haus-of-gaga.com/haus-of-gaga

Lady Gaga and Beyonce-telephone, achart, http://acharts.us/song/52122

 

인터넷 기사

Lady GaGa Detailed Biography, netglimse

http://www.netglimse.com/celebs/pages/lady_gaga/index.shtml

김영현, 연합뉴스, 데뷔음반 관련 이메일 인터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516593

유니온프레스 업컬쳐, 진화하는 레이디 가가! 충격적인 뮤직비디오 ‘Bad Romance’ 공개!!,

http://photo.unionpress.co.kr/Culture/detail.php?cate_no=484&cate_upper=484&no=7630

네모판 연예뉴스,레이디가가 "리틀 몬스터즈에 감사..완벽했다"

http://www.nemopan.com/panfreetalk/6100664

이솔, 만나면 뜬다레이디 가가비욘세」 「「포커스 신문사」」

, http://www.fnn.co.kr/content.asp?aid=dfe8957d95924f51845cdf56347d07d5

오애리, 동성애살인레이디 가가 뮤직비디오 파문,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31501072530071002

Natasia Rose, March 22 2010, Lady Gaga Defends Lesbian & Transgender Scenes in Telephone Video , Lez Get Real

http://lezgetreal.com/2010/03/lady-gaga-defends-lesbian-transgender-scenes-in-telephone-video/

Lady Gaga Wears Gun Bra, Angers Anti-gun Activists

http://www.hopestar.com/article/20130115/NEWS/301159986

∙ 「레이디 가가, ‘타락한 성녀모습 묘사한 투명 수녀복 논란, 「「한경닷컴」」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12111452033&mode=sub_view

심재훈, 빨간색, 강력한 성적 매력」 「「헬스조선」」,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26/2008112600538.html

 

인터뷰 영상

Lady Gaga on feminism,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8skCakDm1sM

 

논문 및 저널

최원석, 한기창(2011), 영상미디어에 등장한 레이디가가의 패션 스타일 분석과 패션 이미지 연구-하위문화 형성을 중심으로-」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Vol.17

연점숙(1998), 레즈비언 페미니즘 : 성 정치성을 조망하는 효율적 프리즘」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연구」」 Vol.2

차희정(2011), 메두사의 후예들: 영미여성 문학텍스트의 여자 괴물 되기」 「「조선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인문학연구」」 Vol.41, pp2-3

류진희(2011), 특집논문 : 한국여성문학회 창립 10주년 기념학술대회-젠더와 양식 ; 팬픽 : 동성()애 서사의 여성 공간」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성문학연구」」 Vol.20

 

Posted by 그렌치바다 그렌치바다

    2013년의 첫책이다. 책을 하도 안 읽어서 이번 년도에는 많이 읽을 계획인데, 첫 출발을 굉장히 재미있고 뛰어난 책으로 시작하게 되어 굉장히 영광이었다. 이번에 올리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특히 감명받은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서평은 따로 시간을 들여 일주일 안으로 쓸 계획이다. 계절학기 때문에 다른 것을 먼저 써야 해서 :)

    이 정리본에는 작가의 말, 나의 생각, 역자의 각주가 뒤섞여 있다. 이걸 다시 정리해야 하나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선택했다. 인류학쪽 책인데 사회와 문화 비평, 학계의 동향, 상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필독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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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진리 ; 사회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 레나토 로살도 / 아카넷 출판사

p28 이 장에서 나는 인간의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힘 cultural force of emotions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예컨대 죽음이 가져오는 <감정적 힘>이라는 것은 어떤 추상화된 사실에서 연유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특정의 친밀한 관계가 영원히 파괴되어버렸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 감정적인 힘은 방금 자동차에 치인 아이가 타인의 아이가 아닌 바로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경험하게 되는 종류의 느낌을 말한다. 따라서 누군가의 감정적 경험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죽음에 대한 일반론을 펼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그 주체가 가지는 위치와 입장을 고려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감정적 힘을 만약 한국적 정서로 표현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아닐까?

p32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모든 것의 끝이라는 끔찍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p85 우리는 놀랄 정도로 단순하게 우리의 국지적 문화를 보편적인 인간 본성으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p87 그는 과거의 민족지 스타일은 주체를 객체로부터 분리시키고, 대도시 중심의 소비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시각적 볼거리로 변질시켜 버린다고 이야기한다.

p88 이런 식으로 터너는 민족지의 <눈 eye>을 제국주의의 <나 I>와 연결시켰다.

제 2장 인척의 아침식사 표현 전반 부분

p98 내 생각에는 어떤 기술방식도 중립적인 매체가 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사회기술을 하는 데 있어 자신의 방식만이 배타적으로 과학적인 합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 가족의 아침식사에 대한 내 작은 민족지를 조금 더 살펴보자. 기술방식에 대한 고전적인 규범은 좀처럼 변형을 허락하지 않지만, 내 묘사가 그 가족의 식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p112 왜 민족지학자들은 자주, 아들을 잃은 아버지나 상을 당한 자가 자살하려는 것을 마치 그저 관습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고 쓰고 있는가? 문화적으로 기대되는 슬픔의 표현방식에 대해 기술할 때 충분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그런 방식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쉽게 회의주의로 빠져들게 된다. 격렬한 감정을 그저 하나의 동작처럼 가치절하 하듯이, 삶을 이루는 관습적인 형식들이 지니는 힘을 그저 관습적이라는 말 한마디로 일축해버리기는 너무나 쉽다. /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미리 제대로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혹은 슬픔을 표현할 때 그 문화 특유의 방식을 따른다고 해서, 처참한 상을 당한 사람이 단지 관습적으로 기대되는 것들을 그대로 하고 있다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에 대한 보고서조차도 표준화시키는 민족지적 관용구로 씌어질 경우, 격렬한 감정을 하나의 볼거리로 치부해 버린다.

p112-113 민족지적 화법과 관련된 고전적인 규범은, 사회적 형식이라고 하는 것이 관습을 통해 각 개인들에게 부과되는 것임과 동시에, 개인들이 그 형식들을 매우 자발적이고 표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지 못한다.

P120 그들은 내가 속한 사회의 병역제도를 비난했고 그와 동시에 내게 몸을 팔지 말라고 권고했다.

P122 일상생활 속에서 일롱고트인들은 상대적으로 <무정부상태>에 놓여 있다. 그들은 흔히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민족국가에 옮겨진다면 일롱고트의 <무정부주의>는 전복적인 것이 될 터인데, 그 이유는 그런 생각은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명령할 수 있고, 때로는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라고 명령할 수 있는 <우리의> 개념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P123 (통일교가 등장하는 파트이다. 워싱턴 타임스의 존 로프턴이 저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는 내용이다. 역시 인간은 어떤 나라에 있든 큰 차이 없다는 부분을 보여줌.)

P126 사회분석가들이 자신이 완벽히 <깨끗>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가능한 한 <더러워>지려고 할 필요는 없다.

P126 연구자들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공정하고 어느 정도는 당파적이며, 어느 정도 순수하고 어느 정도는 공범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위치에 있는가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서문으로 돌아가보면, 죽음에 대한 민족지를 쓴 저자는 심각한 개인적 상실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126의 스스로 파괴한 것에 대한 애도라는 부분은 전체가 다 좋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변명을 위해 만들어 질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 합리화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식민주의의 병폐를 전혀 가려주지 않고 냉철하게 지적한다.

P166 <거대 사회 이론 중 하나는, 모든 이들이 서로를 갈기갈기 찢어놓지 못하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 바로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비록 암묵적이긴 하지만 사회분석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주어서 문화가 곧 질서인 것으로 동일시하고(혼돈에 대비되는 것으로), 사회규범이 곧 규제라고 동일시(무정부적 폭력과 대비되는) 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문화적 질서>나 <규범적 규제>와 같은 구절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라기보다는 동어반복의 군더더기가 붙은 표현으로 들린다.

P170 질서와 혼돈 사이의 공간이라는 글 역시 전체적으로 매우 좋다. 인간의 본성을 통찰력 있게 훑어본다는 느낌이다. 인간이 그렇게 위대하지도,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진심으로 주장한다는 느낌이다. 사실 학술저서들은 대부분 오만하다. 그러나 레나토 로살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명확히 제시한다.

P172 인간의 행동에 대한 분석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포함하지 않는 한 결코 완전한 분석이 될 수 없다. 사고와 감정은 가장 주관적이라고 여겨질 떼조차도 언제나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한 인간의 일대기, 사회적 상황, 그리고 역사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 더구나 과정이란 관점에서 볼 때, 사회가 갖는 항구적인 속성은 구조라기보다는 변화이며, 사회의 가장 포괄적인 매개체는 공간이기보다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P173 (케네스 버크 인용) 당신이 막 응접실에 들어갔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좀 늦게 도착했다. 당신이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와서 한창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토론을 멈추고 당신에게 그게 무엇에 대한 토론인지도 설명해 줄 겨를이 없다. 사실 그 토론은 사람들이 오기 전에 언제나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어서, 거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그 토론의 전체과정을 설명해 줄 자격은 없다. 당신은 돌아가는 논의의 내용을 대충 파악하였다고 여겨질 때까지 잠시 듣는다. 그러고서 참견한다. 누군가 대답한다. 당신은 그에게 답한다. 다른 이가 당신을 변호한다. 또 다른 이는 당신의 반대쪽에 선다. 당신 편에 선 사람이 당신을 얼마나 잘 도와주느냐에 따라 당신의 적수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도 있고 그(녀)에게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토론은 끝이 날 수가 없다.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당신은 떠나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더라도, 대화는 계속된다.

P175 (카를 마르크스 인용)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상황 하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전승되고 주어진, 그들이 직접 대면하게 되는 상황 하에서 역사를 만든다.

P178 객관주의적 사회분석은 탈시간적인 영역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문화적 실천들이 근본적으로 박자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는지를 보지 못한다.

207 이 부분의 일롱고트족과 부르디외의 패러다임의 비교는 저자 자신이 편향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어 솔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정말 최선일까?

P238 우리에게 문화란 사회분석을 포함하는 것이자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괄하는 문제이다. >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삶의 울분이 느껴지는 듯 하다. 저자는 아마도 멕시코계인 듯하다.

P250 도나 에스테르에 대한 에르네스토의 찬사는 매력적이다.

P263 편견과 왜곡이 생겨나는 것은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악덕들, 즉 열정에 찬 관심, 사전 지식, 그리고 윤리적인 개입 때문이라고 가정된다. 만약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대상에 근접해서 분석하는 것 또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는 각기 나름의 결함이 있다.

P266 베버에게 좋은 정치를 한다는 것은 <따뜻함>과 동시에 <냉정함>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순어법의 특질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좋은 학문을 한다는 것도 열정과 일의 융합을 필요로 한다.

P269 예를 들어 억압받는 사람들은 권력의 작용에 대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 이것은 내가 살아온 경험을 뒤돌아 봤을 때 실로 맞는 말이다.

P274 자기만의 텐트 이 부분은 그냥 너무 웃기고 재미있는 글이다. 버스에서 웃음 터질 정도였다.

P282 콘도가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끌어내는 교훈은, 앎의 과정이란 자아 전체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사회분석은 인지적인 동시에 감성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다. 그녀는 계속 변화하는 권력관계의 맥락 속에서 지식을 구성해 내는데, 그것은 다양한 정도의 거리두기와 친밀함을 포함한다. 콘도는 초연함이야말로 객관성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사회분석상의 지식이란 다양한 근원들에 기초해 형성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사회적 실재를 파악하는 <신의 시점>을 가진 초연한 관찰자를 해체하려는 콘도의 제안은 대부분의 고전적 민족지학자를 전율케 한다. 기준이란 없다는 것인가? 객관성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이것이 허무주의와 상대주의가 서로 손잡고 <아무것이나 통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굴레를 벗어난 혼란의 출연을 의미하는가? 아래에서 나는 반대로, 객관주의 해체함으로써 한때 가치중립적이라고 간주했던 영역에서 윤리적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회분석가에게 사회비평가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한다.

p308 <자기>를 지워버리고 단지 <그들>만을 부각시키는 이런 과정에는 어떤 문화정치가 개입되어 있을까?

P313 실제로 차이에 대한 강조는 독특한 비례관계를 낳는다. 즉, <타자>가 문화적으로 가시적이 될수록 <자기>는 그만큼 보이지 않게 된다.

P336 그녀의 견해에 의하면 지금까지 후방이었던 것이 이제 전위가 될 것이다.

P337 우리들 모두는 20세기 후반의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 세계는 국가 민족적 경계, 문화적 경계에 뚫린 수많은 구멍을 통해 상호간 빌려오기와 빌려주기로 특징지어지는 세계이다. 더불어 그 경계에는 불평등, 권력, 그리고 지배관계가 가득 차 있기도 하다.

P340 문화에 대한 이런 <기념비주의적> 견해 속에선 <서구>란 고대의 고전시대와 북유럽을 지칭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유산을 학부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적 노력은, 역설적으로 미국 내 소수계와 제삼세계 저자들의 업적뿐만 아니라 미국의 고전들도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P341 기념비주의 인문학자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절대적으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신화를 지속시킴으로써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른 분야간의 동맹관계를 위장한다.

P342 이때 말하는 합의에선 애당초 그 회의에 초대된 적이 없는 사람들의 견해는 그저 무시된다.

P342 미국대학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갈등에 대한 내 설명이 당파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내 설명이 중립적이라거나, 공평무사, 혹은 초연한 입장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은 때로는 어떤 공동의 이해기반에 근거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구성체가 하나의 전쟁터로 변할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객관주의자나 기념비주의자들은 이런 종류의 싸움을 초월한 곳에 서기를 좋아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전지전능함이란 입장을 취하고, 초연한 입장과 윤리적 중립이라는 <깨끗한> 영역에서 연구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이 취하는 <그 모든 것 위>라는 입장에 포함된 태도는, 지배의 현실에 대한 온건한 인정에서부터 적극적인 봉사까지 다양하다. 그들 자신은 이런 입장이 공평무사한 입장이고, 자신들이 거리를 두는 것은 중립성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내 생각에는 어떤 중립적인 입장에서 문화를 연구하는 경우란 거의 없으며, 따라서 분석가들은 당파적 입장, 이해관계, 감정상태 등에 대해 가능한 한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반면 그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진리와 지식을 위해 봉사하는 공평무사한 탐구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 논쟁은 <우리>와 <그들>을 대립시키는 대본을 따라 진행되는 것 같은 형국이 되었다.

P350 고전적 민족지들이 <원시> 사회를 시간이 정지되고, 자기 충족적이며, 정적인 문화로 그려왔다면, 새로운 인류학적 연구는 사회적 실재들이 갖는 엄청난 역동성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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